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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극복 수기

[난임 극복 수기]돌이켜보면 잊을 수 없는 힘이 되었던 선생님의 말씀에 감사의 인사를..

『본 수기는 분당제일여성병원 제6회 난임캠페인 난임 극복 수기 공모전에 참여해 주신 분의 수기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분은 블라인드 처리가 되었습니다.』 

 

*위 이미지 내용의 이해 돕기 위해 삽입되었습니다.



결혼 후 남편과 가장 많은 의견 충돌은 2세 계획이었다.

삼 남매의 둘째인 나는 2~3명은 낳아야 한다고 했지만,

남편은 아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겼다.

생리를 시작하지 않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산부인과에 갔던 기억이 난다.

아기집을 확인하는데 아직 너무 작아서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피만 뽑고 돌아갔다.

아쉬움 한가득과 설레고 초조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

피검사 수치는 분명 임신이 맞다고 한다.

다시 병원으로 가서 아기집을 확인하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다른 선생님 두 분이 더 들어오셨고, 크로스체크를 하시고는,

'찾았다..' 고 말씀 하시는 선생님 한 분.. 자궁 외 임신이었다.

 

자궁 외 임신이 뭔지도 모를 때, 나팔관에 자리를 잡아 놔두면 산모가 위험하다고..

항생제 치료나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즉 유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떨결에 항생제 주사를 맞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괜히 눈물이 났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항생제 치료를 했지만, 피검사의 임신 수치는 점점 높아져 결국 복강경 수술에 이르렀고,

오른쪽 나팔관은 제거되었다.

 

며칠 입원을 하고 나는 경과를 듣기 위해 선생님을 만났다.

반대쪽 나팔관의 상태도 좋지 않아 자연임신을 할 경우 99% 자궁 외 임신이 될 확률이 높다고... 

 

난임판정이 내려졌고, 그 사실이 나에게는 좌절과도 같았다.

나는 왜 남들처럼 평범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험관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언제든 마음의 준비가 되면 찾아오라던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도 고맙고, 큰 용기가 되었다.

2년 뒤 나는 정말로 시험관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시험관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선생님과 함께 의지를 다져가며 열심히 준비했다.

그 결과 2번 만에 소중한 쌍둥이가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잊을 수 없는 힘이 되었던 순간은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언제든 찾아오라던 말씀.. 우리에겐 시험관이라는 희망이 있다는 말씀..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현재 35주 차이고 10일 뒤에 출산을 앞두고 있다.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시험관이라는 기적과 희망이 있다고 꼭 얘기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