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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극복 수기

[난임 극복 수기]부족하고 또 어른스럽지 못한 나에게 찾아와준 복이&덩이

『본 수기는 분당제일여성병원 제6회 난임캠페인 난임 극복 수기 공모전에 참여해 주신 분의 수기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분은 블라인드 처리가 되었습니다.』


*위 이미지 내용의 이해 돕기 위해 삽입되었습니다.



기억나지도 않은 옛날부터 난 항상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그 가정에는 당연히 나와 남편을 닮은 예쁜 아이의 모습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최고의 벤츠남 남편을 만났고,

어려움 없이 결혼을 하게 되었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안정감과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허니문 베이비를 바랄 정도로 결혼 시작 = 임신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지냈다.

 

자연스럽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1년이 지나 뭔가 이상하다 싶어

큰 생각 없이 병원을 찾았고, 난임치료를 시작하자는 말에 거부감이 확 들었다.

 

언젠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임신 소식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하고

나에게는 왜 그런 소식이 찾아오지 않을까 속상해하며

남편 품에 안겨 훌쩍일 때,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결심을 하고 난임센터를 다시 두들겼고 본격적 검사와 난임치료(?)를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 검사는 3가지 피 검사(호르몬 검사), 나팔관 조영술, 남편의 정액검사

내가 다니고 있는 분당제일여성병원 어떻게 보면 공장(?) 같기도 하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고 짧게 상담하고 약을 처방받고 또 시기에 맞춰서 오고..

 

그 대기 의자에 앉아있을 때 초음파 사진을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부부를 바라볼 때는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부럽다.부럽다.. 한없이 부럽다..

그리고 저 사람들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듯이 나에게도 오겠지..?

그래도 일찍 찾아온 사람들이 부럽다.. 부럽다..

그리고 부럽다..

참 속이 좁다

처음 의사 선생님이 상담을 시작했을 때,

의사선생님이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직 날 만나면 안 되는데~ 난 아주 어려운 케이스 전문인데,

000씨는 엄청 쉬운 케이스여서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정말 희망이 가득했다.

 

그다음에 바로 하라는 대로 했으면 더 일찍 소식이 왔었을 텐데 ..

1년이 지난 후 선생님께서는 다시 확신에 차서 말씀해 주셨다.

"지금 안 급한 게 아니네~ 나만 믿고 따라오면 반드시 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내 마음을 어떻게 이리도 잘 알까.

정말 마음이 푹 놓이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무조건 하라는 대로 하리라 마음먹었다.

클로미펜 복용 + 과배란 주사 + 배란 억제 주사를 시기에 맞춰 처방받았다.

특히 주사를 맞을 때에는 난소의 상황을 자주 체크하는 게

좋기 때문에 한 주에 3번이나 병원을 방문했다.

 

병원 다녀오는 건 2시간이면 충분했지만

왠지 마음이 쓰여 종일 휴가를 내고 남편 품속을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남편은 난임 센터 다니기 시작하면서

병원에 항상 같이 가줬다.

 

근무 스케줄을 바꾸고 휴가를 내고.. 갑자기 눈물이 차오른다.

병원에서 남자의 역할을 정말 전혀 없다.

내 난소 개수 늘리고 크게 하는데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말 나와 같은 마음으로 혹은 더 간절한 마음으로 내 옆을 지켜주었던 남편..

자가주사를 맞는 기간은 정말 괴로웠다.

주사 맞는 건 진짜 15? 20? 밖에 안 걸리는데

내 배를 잡고 솜으로 닦고 주사액을 섞고 내 배에 직접 주사기를 찌를 때..

그 과정 하나하나가 날 너무 마음 아프게 했다.

비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꼭 이렇게까지 하면서 아기를 가져야 하나?

이런다고 꼭 임신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실패하면 또 이 똑같은 걸 다시 해야 하는데..

 

지금은 사라져서 보이지도 않지만 주사기를 잘못 찔렀는지

배에 멍이 생겼을 때가 있었다.

그 멍 옆으로 그다음 날 주사기를 찌를 때가 제일 괴로웠던 것 같다.

그렇게 주사를 5일 정도였나 일주일 정도였나를 맞았다.

남편이 항상 주사를 대신 놓아주었고 직접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정도 했었다.

 

 

그리고 시술 전날, 병원에서 난포 터트리는 주사를 맞았다.

그때 간호사가 주사를 놓아주었는데, 애정의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말 그냥 푹 찔렀다.

남편이 얼마나 나에게 애정을 가지고 해주었는지 확 비교가 되었다.

그 간호사는 얼마나 무심했는지 정말..

대망의 시술 일, 시술은 정말 금방 끝났다.

 

남편은 2시간 정도 일찍 가서 정자를 채취하고

난 그냥 하늘 보고 누워있다가 5분도 안되어 시술이 끝나고

10분 정도 누워있다가 나왔다.

 

하늘 보고 누워있는 그 순간도 마음이 정말 불편했다.

의연하게 좀 어른스럽게 해도 되는데 엄마가 되겠다는 사람이

뭐만 조금 하면 남편 남편.. 남편만 부르고 찾았다.

그다음 날부터는 검색 또 검색 인공수정 1일차 증상, 2일차 증상, 3일차 증상..

증상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괜히 입덧하는 것 같고 머리도 어지러운 것 같고..

온갖 증상 놀이..

 

10일쯤 되었을 때 참고 참았던 임신 테스트기를 해보았고

처음 2줄을 보았을 때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너무 벅차고 기쁜 마음이었지만

초기 유산도 너무 많고 연하기도 해서 기뻐하면

그만큼 슬퍼할 거라는 생각에 맘껏 기뻐하지도 못했다

14일이 되었을 때 병원으로 피검사를 하러 갔다

그날 아침에도 진한 두 줄을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얼마나 불안한지 심장이 목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2일 뒤 피검사 수치가 2배 이상 올라야 정상 임신이고

아니면 자궁 외 임신일 수도 있거나 유산 가능성이 높다 해서

2일 뒤 다시 병원에 방문할 때에는 얼마나 예민했는지 모른다

괜히 남편한테 화내고 투정 부리고 짜증 내고

 

피검사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고 일주일 뒤 심장소리 듣기 위해 예약을 했다

아니 정말 손톱보다도 작은 그 콩알 같은 곳에서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쌍둥이 소식.. 얼마나 기쁘고 벅차고 행복했는지 그리고 2주 뒤, 4주 뒤 등

주수에 맞춰 다양한 검사를 했고 이제 다음 주 17주차 2차 기형아 검사 방문을 앞두고 있다.

유산 위험은 거의 사라지고 어느새 12월 출산을 앞두고 조산을 걱정하고 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온갖 걱정과 불안함과 비참함과 우울하였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런 부족하고 또 어른스럽지 못한 나에게 찾아와준 복이 덩이가 참 고맙다.

오늘 아침도 일어나자마자 배가 좀 줄어든 것 같아서

아직도 불안해서 남편에게 칭얼거렸지만 이제는 좀!!

의연하게 편안하게 마음을 가져야겠다.

난임은 함께 넘는 언덕이다.

난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얼추 20만 명이라고 한다.

결혼이 늦어지면서 난임센터를 찾게되는 여자가 더 많아지고 있는데,

결혼을 늦게 한 게 꼭 여자의 잘못(?)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주변에서 꼭 그 언덕을 함께 넘어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임신은 반드시 오는 행복이다.

이 언덕을 넘으면 언젠가는 꼭 오게 되는 그런 반드시 오고야 마는 행복..

대학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 천지다.

근데 그 아픈 사람들이 나는 왜 이렇게 아플까 하고 자책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게 당연하듯이 난임환자도 난임센터가면 천지니까

난 왜 임신이 안될까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고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병원을 다니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