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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극복 수기

[난임 극복 수기] 15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만난 기적

『본 수기는 분당제일여성병원 제3회 난임캠페인 난임 극복 수기 공모전에 참여해 주신 분의 수기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분은 블라인드 처리가 되었습니다.

  

*위 이미지 내용의 이해 돕기 위해 삽입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경기도에 거주 중인 40대 직장 여성입니다.

 

40대 초반, 둘 다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저희 부부는 자연임신을 시도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될 것 같아

곧바로 인공수정을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시술을 위해 몇 가지 검사를 받던 중 한 쪽 나팔관이

막혀있다는 진단을 받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인공수정 시술을 했으나 실패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후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시험관 시술로 바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신선배아 시술. 신체 나이에 비해

난소 나이는 35세 정도로 꽤 건강한 편이었고,

자궁이나 건강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평소 술, 담배

전혀 하지 않던 터라 큰 걱정 없이 시술을 받았습니다.

 

3일 배양 배아 3개 이식, 결과는 착상 성공!!

첫 시험관 시술에 성공하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나 싶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쁜 나날들이었습니다.

1차 피검사 전후로 갈색 분비물들이 계속 비쳐 걱정이 됐지만

당시 매일 사용하던 질정제 때문일 수도 있다는 주치의 선생님 말씀에 걱정을 덜었습니다.

 

5주 차, 6주 차도 무사히 넘기고 7주차에 심장소리를 듣던 날

선생님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기가 좀 작네요. 심장도 살짝 느린데 조금 더 지켜볼게요.

라고 하신 말씀이 그땐 어떤 뜻인 줄 잘 몰랐습니다.

 

그저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신기하고 감동이라

코앞에 닥친 불행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변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축하받으며 행복에 취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심장소리를 듣고 돌아온 바로 이틀 후,

입덧 증상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입덧이 심하진 않았지만 뭔가를 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속이 너무 울렁거려 힘들었는데 그 증상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그때도 몰랐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 인 줄...

그냥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입덧이 짧은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8주 차 병원 방문 후 초음파로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계류 유산 판정.

상상도 못했던 결과였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실감도 안 나고

뱃속에 아이가 잘못된 걸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슬픔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소파 수술을 받고 6개월 정도를 몸조리하며 보내야 했습니다.

 

유산의 원인을 알기 위해 병원의 권유로 태아의 유전자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염색체 이상.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던 저희 부부는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 후 다음 시술 때부터는

‘착상전 유전자 검사(PGS/PGD)’를 받기로 했습니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후 저희 부부는 곧바로

두 번째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습니다.

채취된 난자의 개수는 6개 전후. 그중 생성된 배아의 개수는 절반정도.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니 이식 가능한 배아가 단 한 개...

상당히 높은 확률로 ‘염색체 이상’ 소견의 배아가 나오는 걸 보고

적지 않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여쭈니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산모가 고령일수록 염색체 이상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답을 듣고 너무 절망했습니다.

모든 게 다 제 잘못인 것 같고 죄책감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신선배아 이식도 실패

절망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남편도 저도 이젠 임신을 위해 남은 시간이 매우 짧았기에 지체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 하는 데까지 해보자.

남편과 함께 다짐을 하고 그날 이후로

3개월에 한 번씩 꾸준히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평균 채취되는 난자의 개수가 10개 미만인데다

유전자 검사를 통과하는 정상 배아의 숫자는 겨우 한 두 개이거나

아예 하나도 없을 때도 있어 냉동배아는 아예 불가능했고,

이식 가능한 배아가 하나도 없어 난자 채취만 하고

시술을 종료해야 하는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심산으로

가능한 모든 검사를 다 받고 의학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시술에 임했습니다.

 

그 사이 자궁 유착 제거 수술 3번에 난소에 물혹이

여러 번 생기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번이 넘는 시험관 시술이

번번이 착상에 실패를 거듭하며 몸과 마음이 점점 피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건강엔 문제가 없는데... 왜 착상이 되질 않는지...

모든 검사에서 이상 없음 소견이 나오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착상이 안되는지...

주치의 선생님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리실 정도로

아무런 이상이 없고 더 이상 시도해 볼 다른 검사나 방법도 없는데

도대체 왜 안되는 건지... 정말 내 나이가 많아서 그것 때문인지...

이젠 정말 포기해야 하는 건지...

 

결혼 전에는 제가 이런 문제를 겪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 했던 터라 매번 실패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정부 지원 차수는 다 쓴 지 오래인데다 번번이 유전자 검사까지 시행하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아 마음 편하게 일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점점 대인기피증까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왜 아이 안 가져?”라는 인사말들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더해 충고라도 하듯 쓸데없는 불필요한 조언을 내뱉습니다.

그럴수록 사람들 만나는 게 싫고 위로도 안 되는

위로를 받는 것도 너무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번의 시술을 거듭하며 성격도 예민해지고 짜증도 부쩍 늘어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다 받아주던 남편도 점점 한계에 부딪혀 같이 짜증으로 맞받아치면,

또 그런 남편의 모습에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 흘린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심지어 시술을 앞두고 폭발해 부부 싸움을 하고 병원에 간 날도 더러 있었습니다.

난자 채취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내가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눈물이 멈추지 않은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완전히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그냥 다 내려놓고 좋은데 여행이나 다녀와라,

그러다 보면 생긴다더라’하는 말들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마음에 와닿지도 않고

또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끝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모를까 중간에 포기하면

나중에 정말 후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4년의 시간 동안 병원을 4번 옮겨가며

2~3개월에 한 번씩 신선배아 시술을 쉬지 않고 시도했습니다

3번째 병원에서 나팔관 검사를 다시 받았는데 그동안

한쪽이 막혀있는 줄 알았던 나팔관이 양쪽 다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나마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팔관마저 정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시술이 실패하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4번째 병원에서 ‘착상전 유전자 검사’에 대해

회의적인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검사가 오히려 배아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소견으로

유전자 검사 없이 배아이식을 해보자 하셨습니다.

첫 시험관의 실패가 생각나 막상 검사 없이 진행한다니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착상이 안 되는 것보다 착상 후 유산을 겪는 것이

훨씬 고통스러웠기에 혹시라도 같은 경험을 반복하게 될까

겁이 나고 두려웠지만 주치의 선생님을 믿고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또 1년 가까이 시도했지만 번번이 착상에 실패했고

지난 2020 8, 14번째 시험관 시술 후

1차 피검사 때 6이라는 수치가 나왔습니다.

착상이 되었다가 조기 탈락한 것 같다는 진단을 들었습니다.

정말 하늘이 또 한 번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완전히 수치가 내려가는 걸 확인해야 한대서

며칠 후 두 번째 피검사를 받고 그제야 최종 비임신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젠 정말 벼랑 끝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벌써 가임기인 만 45세를 훌쩍 넘어 이제 겨우 몇 개월의 시한을 남겨두고 있자니

그 절망감은 더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이젠 정말 포기해야 하나...

 

자신감은 이미 바닥을 찍고 더 이상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번만 더 해보자, 한 번만 더 해보자 했던 게

어느덧 15번째 시험관 시술을 앞두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음 차수를 시도할 자신이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점점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더 많이 들고 남편이 내가 아닌

좀 더 나이가 젊고 건강한 여자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안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시술을 앞두고 남편과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조심스럽게 “우리 이번에도 안 되면 솔직히 나는

다시 시도할 자신이 없을 것 같아...”라고 속마음을 슬쩍 내비쳤습니다.

남편 또한 그동안 반복된 실패를 경험하며 많이 지치고

낙담하고 있던 터라 저에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이번에도 안 되면 그땐 둘이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남편의 위로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다음 시술을 준비했습니다.

시술 전 주치의 선생님께 한 번에 이식 가능한 배아의 개수를 여쭈니

3개까지 가능하다 하셨습니다.

첫 시험관 이후로 매번 2개의 배아만 이식했었는데

혹시 이번에 가능하면 3개 이식할 수 있는지 여쭈니 그렇게 하자 하셨습니다.

2020 11, 15차 신선배아 시술을 시작했습니다.

 

이날따라 평소 채취되던 난자개수에서 가장 적은 수의 난자가 채취되었고

수정된 배아 개수는 그나마 3개가 전부... 과연 몇 개나 이식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3일 배양 후 다행히 3개 전부를 이식할 수 있었습니다.

배아 등급에 상관없이 그냥 전부 이식했습니다.

시술을 마치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데

내 몸을 하루하루 더 늙어가고 난자와 배아의 개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반복된 실패와 절망이 한편으로는

사람의 감정을 조금씩 무뎌지게 만들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처음 실패했을 때보다 14번째 실패했을 때가 왠지 덜 힘들었고

결과에 대한 집착을 오히려 조금씩 덜어내게 만들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그냥 너무 지쳐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이런 반복된 실패들이 제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줄어든 기분이 들었습니다.

 

조금 홀가분한 마음...?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 때가서 다시 심기일전해 재도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다시 들었습니다.

 

이식 때마다 매번 매일매일 증상에 집착하던 것도 이번엔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열흘을 보냈습니다.

1차 피검사를 앞둔 전날 늦은 밤,

병원 가기 전에 임신 테스트기나 한 번 해보자 싶어

한 개 남아있던 테스트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정말 믿어지지 않는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이 보였습니다.

 

이게 뭐지? 테스트기가 잘못된 건가 싶어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여분이 없어서 다음날 아침까지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1차 피검 결과 임신반응!!!!!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2차 피검 때까지 하루하루를 떨리는 마음으로 보내고

2차 피검 수치도 안정적으로 올랐다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천사가 찾아온 게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습니다.

첫 시험관 때 8주 차에 겪었던 아픔이 생각나

혹시라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건 아닐지

매일매일이 기쁨보다 걱정이 더 큰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5주 차, 6주 차를 지나

7주 차에 들은 심장소리는 아주 건강했습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6주 차 때부터 갈색혈과 붉은혈이 비쳐

유산방지 주사인 슈게스트 주사를 30일이 넘게 맞아야 했습니다.

매일매일이 불안함과 두려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하루를 보내며

저는 지금 임신 12주 차에 들어섰습니다.

 

그동안 수십 번의 착상전 유전 자검사를 거치며

매번 염색체 이상의 배아가 정상 배아 보다 훨씬 많았던 탓에

과연 뱃속의 아이가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을지 늘 걱정이 앞섰습니다.

 

며칠 전 1차 기형아 검사를 앞두고 혹시나

염색체 이상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목투명대도 정상, 코뼈도 잘 보이고

위장도 보이고 주수대로 아이도 잘 크고 있고 심장도 잘 뛴다는

주치의 선생님 말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직 니프티(NIPT)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지만

이제야 두려움보다 기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앞으로도

매일 살얼음판 같은 하루를 보내겠지만

기적처럼 찾아온 이 아이 덕분에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합니다.

병원에서도 초산 임산부 중 거의

최고령 산모라고, 정말 기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중간에 포기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이 기적 같은 순간이,

저처럼 나이가 많고 저처럼 열 번이 훌쩍 넘게 여러 번

실패를 반복한 난임 부부에게도 언젠가는

이런 기적이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고 싶어

난임 극복 수기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