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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극복 수기

[난임 극복 수기] 소통으로 넘는 난임의 언덕

『본 수기는 분당제일여성병원 제3회 난임캠페인 난임 극복 수기 공모전에 참여해 주신 분의 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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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 내용의 이해 돕기 위해 삽입되었습니다.



28세에 결혼해, 29세에 자연임신을 했지만

7주에 계류유산을 하였다.

 

주변 사람들은 가슴 아프겠지만

계류유산으로 자궁이 깨끗해졌으니 곧 다시 임신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 2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32, 산부인과에 가서 배란 일정을 잡고

자연임신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임신이 되지 않았다.

 

계류유산, 계류유산 후 임신,

자연임신 등 매일같이 다른 사람들의 난임 이야기를 검색했다.

그렇게 검색하다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다 주변 어른들이 한약을 먹고 몸을 만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유명한 한의원을 찾아가 임신이 잘 되는 한약을 지어달라고 했고 3개월을 먹었다.

임신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레었다.

다시 산부인과에서 배란 일정을 잡고 임신을 시도했다.

 

역시.. 임신은 되지 않았다.

일반 산부인과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졌다.

쳇바퀴 같은 임신 준비가 싫어졌다.

33세에 난임 병원을 처음 방문했다.

회사를 다니고 있어, 아침 7시 예약을 하고 다녔다. 정말 놀랐다.

난임 병원이라는 곳도 처음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산부인과와 다르게 모두가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편했다.

 

원인을 검사했다.

결과, 아기를 갖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었다.

다음 달 바로 인공수정을 하기로 하였다.

시험관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다고 하니

마음도 편했고, 바로 임신이 될 것 같았다.

다시 설렜고 아기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2번의 인공수정에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임신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었으면 좋을뻔 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회사를 그만뒀다. 내 일정대로 병원을 예약할 수 없는 시험관 일정이

장기간 되면서 회사 눈치를 보게 했기 때문이다.

 

병원을 옮겼다.

집에서 2시간이나 되는 거리였지만, 유명하다고 하니 한걸음에 갔다.

바로 시험관을 해보기로 하였다.

 

인공수정과는 달리 검사도 많았고 그때 당시

보험이 안되는 항목이 많아 비용도 많이 들었다.

난자 채취의 수에 따라 시도해 볼 수 있는 시험관 횟수가 정해졌다.

 

3. 3번의 기회가 있었다.

이번엔 되겠지. 이번엔 되겠지. 모두 실패했다.

3번을 하는 동안 나는 수십 번 병원에 가야 했고, 주사를 맞아야 했고,

약을 먹고 넣어야 했으며 수십 개의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하며

임신에 대한 설렘과 낙심에 노출되어야 했다.

 

그렇게 시험관 3번을 하는데 7~8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다시 회사를 다녔다. 남편과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시작했다.

아기를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장기간 임신 생각에 묶여 있는 내 자신을 해방시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35, 남편 회사 사람이 소개해 준 난임 병원으로 갔다.

나는 다시 시험관을 준비하던 2년 전으로 돌아갔다

 많은 검사와 배란 유도 등 준비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시험관을 진행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시험관 시술은 불편했지만

그보다 임신에 대한 기대를 하게 했다.

 

그런데 시험관 후 밖에서 휴대폰을 보며 기다리는 남편을 보니 화가 났다.

‘왜 나는 이렇게 매번 이 순간을 혼자 견뎌내고 있는 것 같지?

별 대수롭지 않게 시술을 마치고 나왔으나 갑자기 슬퍼졌다.

남편에게 이런 마음을 그대로 전달했다.

그날 대화를 통해 나도 몰랐던 내 마음 그리고 남편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나누었다.

 

그동안 나는 많은 주변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하는 말들을 쫓아다녔다.

그런 말들이 나를 위로하고, 나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것을 남편과의 대화 속에서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남편과의 방향성을 같이 맞추고

서로 진실로 소통하는 것이 먼저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장기화되는 난임시술에서는 더욱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다시 한 시험관 1차에 임신을 했고,

36세가 되어 첫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동결 배아를 사용해

시험관 2, 3차를 시도했고 38세가 되어 둘째는 딸을 낳았다.

결혼 10년에 꿈같은 4식구가 되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도 꿈인 것 만 같다.

 

난임, 그것은 우리 부부에게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올무, 풀어야 할 숙제였다.

우습게도 그렇게 고달픈 시간들이 지금 와 보니

‘인생 굴곡의 한 시점’으로 밖에 안 보인다.

 

물론, 지금 와 보니 무튼 우리는 이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이 소통임을 안다.

 

가족 간의 듣고 말하는 기본 중에 기본을 잘 해나간다면

앞으로도 많은 인생 굴곡을 이처럼 지나 보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