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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극복 수기

[난임 극복 수기]난임이라는 터널을 통과하며...

『본 수기는 분당제일여성병원 제3회 난임캠페인 난임 극복 수기 공모전에 참여해 주신 분의 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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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내용의 이해 돕기 위해 삽입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되고 당시 힘들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웃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난임의 시간은 나에게 그렇지 못하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아마 인생 가운데 손꼽을 수 있는 힘들었던 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이긴 하겠지만 비교적 길지 않은 시간

터널을 통과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나에겐 너무 길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시간이었다.

 

늦은 나이, 36살 끝자락에 결혼을 하고 보니 금세 37살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아가가 생기겠지 했던 생각은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8개월 만에 우리 부부는 난임 병원을 찾게 되었고,

검사를 해본 결과 둘 다 별문제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3~4달 정도 클로미펜을 먹으며 기다려 보기로 했으나 소식은 없었고..

결국 인공수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37살 해가 지나가면서..

나이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조급함이 생겼던 것 같다.

 

한 번의 인공수정은 실패로 결론 맺고 바로 시험관 시술을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위치와 크기라 했지만

시험관을 위해서 폴립을 먼저 제거해야 했기에 폴립 제거 시술을 했다.

 

37살 그해 12..

시술은 잘 되었고 생리를 기다리고 있던 중,

생리 주기보다도 먼저 시작된 출혈은 무려 열흘 이상 멈추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정말 우울한 연말이었다.

지혈을 위해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병원을 방문해가며

거즈를 삽입했다가 빼가며 지혈에는 성공했다.

그렇게 38살을 맞이했다.

 

새해 2월에 첫 시험관, 실패..

시험관을 해보니 난자가 건강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걸 알게 되었고

2차까지 실패를 하고 3차에는 저자극으로 난자 채취를 진행했다.

1,2차 과자극을 하여도 난자 채취 개수와 질이 별로였던지라

저자극으로 진행을 하자고 하셨던 것이다.

나는 갈수록 더욱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던 찰나였다.

난자 채취 전 초음파 확인 결과 한 개는 너무 많이 자랐고,

한 개는 너무 작다고.. 그래도 우린 2개 채취가 목표라 하셨다.

지난 1,2차 시험관 진행할 때는

난자 채취를 하며 정자 채취를 동시에 진행했었는데,

이번에는 목표 채취 개수가 2개인 거지 채취가 아예 안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채취되는 상황을 보고 정자 채취를 한다고 안내받았다.

 

하아.. 이런 경우도 있구나..

슬픈 마음 다잡아 가며 시술실로 들어갔고

마취 후 난자 채취를 마칠 수 있었다.

수면마취였기에 마취도 덜 깬 비몽사몽 상태에서

회복실로 나를 옮기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물어본 말이..

 

“난자 나왔나요?”돌아온 대답은 알지 못한다는 말뿐,

마취 깨고 상담실 가서 들으라고 했다.

회복실로 옮겨온 나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마취에서 깨어났다.

 

상담실로 가라는 안내를 받고 탈의실에 와서는

바로 신랑에게 연락을 했다. “정자 채취했어?” “응”

 

할렐루야.. 너무 감사해서 울었다.

‘난자가 채취되긴 했구나... (쓰면서도 그때 생각에 울컥..)

상담실에서 듣길 4개나 채취가 됐다고 했다.

난자질은 아직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많이 채취가 되었기에 그저 감사했다.

 

2~3일 후 병원으로부터 연락받기를

난자와 정자는 잘 수정이 되었고 3개 냉동 들어간다고 했다.

애초에 저자극으로 몇 번 난자를 모아서 한 번에 이식하자는 계획이었는데,

이번에 개수도 잘 나오고 수정도 잘 되어 다음 달에 바로 이식하자고,

담당 선생님이 말씀하셨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어머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전화를 받고 한 달을 보낼 때는 배아들이 해동은 잘 될지,

배아들의 컨디션이 괜찮을지 별 걱정이 다 되긴 했지만

생각지 못했던 일들로 인해 감사함으로 기다리려 노력했던 것 같다.

 

드디어 7월 이식.

감사하게도 3개가 잘 해동이 되어 배아 3개를 이식하게 되었고..

기다림의 시간 끝에 2개의 배아가 착상됐음을 확인했다.

믿기지 않았다. 난임 센터였기에 다른 예비 산모들을 위해서라도

너무 좋아할 수도 없었지만, 그저 어안이 벙벙했던 것 같다.

 

3차 냉동 이식에 들어가면서는

NK 수치, 혈전 등 혈액검사를 진행했었고

담당 선생님의 적극적인 처방으로 면역글로블린,

크녹산 주사 등 이전에 하지 않았던 처방들이 있었다.

 

고가의 주사 덕분에 쌍둥이 임신에 받는 바우처는 이내 동이 나긴 했지만,

그와 비교되지 않는 기쁨과 감사함이 있었다.

 

현재 내일이면 임신 8개월 진입을 앞두고 있다.

늦은 나이기에 한 번에 쌍둥이 임신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데,

정말 쌍둥이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세 자매 중 맏이임에도 결혼도 제일 늦게 하고

조카 3명을 볼 때까지 임신도 쉽지 않았었기에

내 안에 서러움이라 표현해야 할 것은 그런 감정들이 미묘하게 얽혀있었다.

결론은 동생들 보다 출산도 제일 늦게 하게 됐지만,

그래도 나에게 임하는 때가 있겠지 생각하며 나를 다독여본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을 수 있지만 나이에 대한 부담,

시댁으로부터의 부담, 동생들에 대한 부담..

결코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 부부는 조금은 단단해진 거 같아 감사하다.

지나고 보니 감사라는 표현을 쉽게 쓸 수 있는 거겠지..

나 역시 모양은 다를지라도 어려움의 상황 가운데도

감사를 찾을 수 있는지..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지금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앞의 일은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터널의 끝은 반드시 온다는 생각을 잊지 말고

그저 그 시간을 인내함으로 잘 버텨낼 수 있기를 기도하며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