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 이미지는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되었습니다.
16년 전의 일.
기억이라고 해야 하나, 추억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수식어가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난임으로써의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가끔은 잊어버리기도 하고, 문득 생각하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다양한 감정선에 혼란을 경험하기도 한다.
임신하지 못한 10년, 너무 힘들고 지루했던 고통의 시간들을 뒤로 한 지금은 보상 같은 딸은 사춘기와 나는 갱년기를 동시에 맞이하며 티격태격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결혼 초기, 임신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1997년 11월, 3년 연애 끝에 장남인 남편과 만나 결혼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
결혼 전에는 약간의 신혼을 즐기고 싶었으나 시조모님을 보니 일찍 아기 갖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먼저 결혼한 친구를 따라 산부인과를 처음 찾았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결혼 1년도 안 되었는데 뭐가 그리 급하냐"며 기본적인 건강검진만 받아보라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1년 6개월…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임신이 되어야 하는데, 다시 산부인과를 찾아 임신에 필요한 검사를 전부 진행했다.
결과는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이었고,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배란 유도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배란 유도 6개월째, 나팔관 사진을 찍어보니 한쪽이 막힌 것 같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래도 한쪽 나팔관이 있으니 임신에는 문제없다는 말을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한약, 운동, 그리고 반복되는 실망
남편의 권유로 한의원을 다니며 임신에 좋다는 약을 먹기 시작했고, 운동도 병행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씩 너무도 규칙적인 생리에 점점 민감해졌고, 밤마다 악몽에 깨어나 울기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약을 이만큼 정성을 들여 먹었는데 왜 임신이 안 될까?"
나도 모르게 전국으로 유명하다고 소문난 한의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에서 임신에 좋은 방법들이 소개되면 빠짐없이 보고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노력을 할수록 돌아오는 실망은 점점 크게 돌아왔다.
난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 거렸고,
한편으로는 '난 아무 이상 없잖아'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기도, 말로 회피하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기도 했다.
또 그렇게 3년째…
한약이 싫었습니다. 시커먼 한약이 사약처럼 느껴지고, 그리 좋아하던 커피 물도 한약처럼 여겨져 시커먼 모든 것을 보기도 먹기도 거부하게 되었다.
한약을 끊음과 동시에 한동안 마음이 편했지만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아이들이 이뻐 보이질 않았다. 아이 보기 싫었다는 말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내가 임신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친구들의 아이가 하나둘씩 생겨 만날 때마다 내 눈앞에서 뛰어다녔다.
왜 그리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야속하기만 한지…
난 그만큼 노력해도 안 되는데…
아기를 데리고 만남에 나오는 친구들을 나도 모르게 멀리하게 되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난임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어서 샀다.
그리고 남편이 알까 봐 몰래 숨겨놓고 읽었다. 읽으면서 울기 시작한다.
이 책은 나에게 말하고 있다. "현재를 인정하라고, 난임이라는 그것을 인정해야 된다고."
4년의 세월을 여러 방법으로 시도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난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다 — 인정하기 싫었다. 남이 알까 봐 몰래 병원 다니고, 약 먹고, 속이 상해 울고, 그리고 책 읽고…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부산 난임 병원, 첫 시험관 시술의 시작
지인 소개로 전문의에게 이전 차트를 보여주고 진료를 받았고, 난임 시술을 위해 부산 난임 병원을 찾아가 시험관 시술 과정을 처음으로 설명 들었다.
사람 마음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아도 마음 바꿔 먹기가 어려울 뿐이지, 오히려 병원에 다니고 보니 마음은 편했다.
"나 혼자 난임에 고통받는 건 아니야"라는 안도감과 여러 난임 분들과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부분이 편했다.
장기 요법으로 결정하여 주사를 매일 아침 배에 2~3대씩 맞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사 맞는 부위는 딱딱해져 갔고, 감정의 기복은 하루에도 수없이 달라지며 남편에게 짜증만 부렸다.
드디어 첫 번째 난자를 채취하고 3일 뒤 이식하는 날, '처음이라 그런 거야, 첫 술에 배부른 건 기대하지 말자' 속으로 여러 번 반복하며 불안한 나를 위로하고 다독거렸다.
시술을 마친 후 회복실에서 5시간 동안 안정을 취하는 동안, 그날 함께 시술받은 사람들과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이야기 나누었다.
서로를 다독거려주고 위로하며 공감하는 — 처음으로 따듯하고 외롭지 않은 시간이었다.
1차, 2차 연속 실패 — 어둠 속에서
결과는 12일 후 피검사로 한다며 주의할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역국을 끓여놓고, 임신 착상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와 과일을 먹으며 12일 동안 누워서 몸조리에 들어갔다.
피검사하는 날…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갔지만, 너무도 야속하게도 피검사 수치는 나오지 않았다.
머리는 멍하고, 남편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2개월이 지나고 2차 시험관 시술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1차 때와는 달리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질 않았다.
2차 피검사하는 날…
설마 이번에도 나쁠 리가, 마음속으로 행운을 기대하고 싶었다.
결과는 실패.
실패를 통보하는 간호사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흐트러지는 내 모습을 누구라도 알아차릴까 봐 얼른 병원을 빠져나와 차를 타고 달렸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달리고만 있었다.
결혼 9년째, 다시 시작한 시험관 시술 — 그리고 5번의 실패
남편과 함께 테니스를 취미로 시작하며 임신에서 잠시 벗어나 건강한 몸을 만들기로 했다.
남편의 배려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일도 잘 되어가며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결혼 9주년이었다.
그러나 나이는 노산이 되었고, 남편도 사십이 다 되어가자 다시 불안과 걱정이 시작되었다.
난임 정부 지원 정책이 생기면서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너는 뭐 하냐, 이젠 나이가 많아 더 힘들텐데.. 차라리 입양이라도 하든지."
느닷없이 하시는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뭉그러졌다.
이번에는 시댁, 친정, 가까운 친구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했다.
"나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1차 실패, 2차 실패, 3차, 4차, 5차 실패…
세상이 나를 속이는 것 같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오래전부터 내가 아닌 나의 모습이었다.
몸은 과배란 주사로 망가져 배는 임신한 사람처럼 부풀어 올라 몸에 맞는 옷이 없었다.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남편과의 이별 — 그것은 이혼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지쳐 보인다고 몸도 쉬어주고 마음도 추스르고 다시 오라고 말했다.
남편이 나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2박 3일의 정동진 기차여행… 그리고 내 마음속의 이별 여행.
여행 중에도 주사는 계속 맞았다.
제시간에 맞춰야 했기에 기차 안에서, 여자화장실에서 주사를 챙겨가며 설렘과 아픔이 교차하는 여행이었다.
생일 날, 피검사 수치 168 — 기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6번째 시술이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혼에 대한 나의 마음 정리는 어느 정도 끝을 내고 있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겨운 몸조리가 시작되었다.
불안한 마음… 밤마다 시달리는 악몽… 울다 지쳐 자고 일어나면 울고…
이렇게 보내는 날이 많아지고 어느새 피 검사 전날, 자다가 놀래서 깨어나 화장실을 갔는데 붉은 피.
분명히 피가 나왔다. 너무 잔인했다.
피 검사 당일, 병원 가는 것조차 포기하고 있는데 친구가 전화 왔다.
피 검사하는 날은 나의 생일날.
"병원 갔냐고… 생일 밥 먹자고…"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나를 친구 손에 이끌려 병원을 갔고, 피 검사만 해 놓고 병원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들었지만 믿을 수 없어서 여러 번 되물었다.
의사 선생님이 똑똑히 말했다 — 임신이라고.
그렇게 내가 바라던 임신이라고.
오늘은 내 생일인데… 내가 정말 임신이라고…"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은 온다
기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나에게도 기적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생일 날 임신 소식을 들었고, 결혼 10주년에 딸이 세상에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기록하던 육아 일기가 나의 인생 일기로 전환되었고, 결혼 20주년에 딸과 함께 웨딩 사진을 찍으며 우리 가족은 그렇게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
아직도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난임에 대한 글을 검색하여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둡고 힘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예비맘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며, 포기하지 않길 기도하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시간들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지금의 기다림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잠시 늦을 뿐이라 생각하며, 희망의 끝을 놓지 않는 한 기적은 꼭 찾아오는 거라 믿습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나의 기적이 여러 예비맘들의 기적으로 이어지길 항상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난임 극복 수기 자주 묻는 질문 (F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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