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수기는 분당제일여성병원 제3회 난임캠페인 난임 극복 수기 공모전에 참여해 주신 분의 수기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분은 블라인드 처리가 되었습니다.』
*위 이미지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되었습니다.
저는 5년 동안 2번의 신선, 10번 이상의 냉동, 2번의 큰 유산 끝에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저는 20살에 고열에 시달리며 크게 앓아 스틸씨병라는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지만, 20대 초반부터 약의 부작용으로
골밀도가 낮았고 늘 피곤했으며 체력이 부족했습니다.
저 스스로 임신이 가능할까 늘 걱정했고, 이러한 자신감 부족이
아마 제 긴 난임 기간에도 한몫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인공수정, 신선 채취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난임 2년 차에 기적처럼 한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모두들 공감하시겠지만 두 줄만 나오면 그 뒤로는 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피검 수치가 표준치에 도달하지 못했고
예상대로 10주까지 지켜져왔던 태아가 심정지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리보 같던 태아가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멍하니 제 자궁에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다니던 병원은 난임 전문병원이어서 다른 곳에서 소파수술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겪는 큰 유산에 저는 ‘자연 배출’이라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하필 12월 31일에 병원에 입원해 자궁수축제를 투여했고, 아기집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고통을 안겨준 그 해에 아기집이 나와 깔끔하게 마무리되기를 원했지만
다음 해 제야의 종이 울릴 때까지도 아기집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해의 2시경이 되어서야 아기집이 나왔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고, 부푼 희망이 사라진 채 또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허탈했습니다.
총 9개의 냉동 배아에서 냉동이 2개가 남았을 때, 저는 병원을 바꿔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 맘 카페를 통해 알아보고 “분당제일여성병원” 백은찬 교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병원을 옮기기로 하고, 커다란 산소통에 냉동 배아 2개를 옮겨왔습니다.
하지만 옮겨온 냉동 배아 2개는 그 수고가 무색하게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분당제일여성병원에서 와서 다시 신선 채취를 시작했습니다.
호기롭게 병원을 옮기긴 했지만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많이 지쳐있었고,
임신에 대한 기대와 저의 자존감이 많이 꺾여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런 사례를 지금까지 성공시키셨다고 말해주시면서,
꼭 임신할 수 있게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만 하여도 제가 그 말을 순순히 믿지 못할 만큼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선생님은 후에 그 약속을 지켜주셨습니다.
다행히 채취 후 바로 이식이 가능해서 처음으로 두 개의 배아를 이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배아 중 한 배아가 잘 자라주어서 임신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배아는 늘 1~2주가량 성장이 더디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잘 자라주어 안심했더니 14주경에 또 아이가 심정지 판단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도 늘 걱정하셨는데 역시 우려대로 두 번째 큰 유산을 겪게 되었습니다.
유산을 해보신 분들을 알겠지만, 주수가 올라갈수록
그 허탈감과 충격을 주수만큼 올라갑니다.
첫 번째 유산보다 더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유산을 겪었을 때는 저의 자궁은
생명이 자라날 수 없는 곳인가 하는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과연 이게 될까라는 의심을 지속해왔던 것 같습니다.
결국 병원에서 소파수술을 하게 되었고, 몇 달간의 휴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염색체 검사를 거친 배아는 결국 염색체 이상(기형)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너무 절망스러웠지만, 또 사람이라는 게 견디고 살아지게 됩니다.
휴식 후 진행했던 이식에서 저는 임신을 하게 되어 출산을 하였고, 지금 아이는 16개월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아이가 임신이 되었고,
이 아이를 임신한 과정에서는 놀랍게도 아이는 주수에 맞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에 대한 의심과 유산의 과정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말입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임신을 준비하고 난임을 겪으며,
제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다른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해내는 일을
해낼 수 없으면서 오는 여성으로서의 자존감 상실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대인관계도 단절되고, 저 스스로 동굴로 숨어들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3년 차 이후로 방법을 조금씩 바꾸었습니다.
저는 시험관을 쉬는 기간에는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길렀습니다.
또한 일도 계속했습니다.
처음에 시험관을 시작할 때는 이것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도 쉬면서 했지만, 오히려 그게 저를 망치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임신에 성공한 시점에는 회사 생활도 열심히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난 임신이 잘 안되는 난임이야’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된 시점이었습니다.
우리는 ‘불임’이 아니라 ‘난임’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를 위해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과연 우리에게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요?
저출산 시대에 난임을 극복하려고 한다면 박수받을 일 아닐까요?
저는 임신이 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 인간에게 운명이 있다면 저는 그 나이에 임신을 할 운명이었는데
너무 서둘렀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결국 언젠가는 될 일인데, 그 시기가 아직 안온 것 뿐입니다.
저는 분당제일여성병원에 왔을 때 선생님이 처음해 주신 말이 기억이 납니다.
중간에 포기하지만 않으신다면 임신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했던 백은찬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나를 움츠리고 숨으려 하지 마시고, 남들과 다름없게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면서
꾸준히 해나가신다면 반드시 극복하실 수 있고, 예쁜 아이를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5년 동안 주변에 난임을 겪는 사람도 없었고,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조차 드물어 모든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서만 접하고 준비했지만,
제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성공사례들이 힘이 되어
난임을 극복할 수 있었고, 분당제일여성병원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공사례들을 읽으며, 나도 언제 저런 걸 써볼까 했는데,
막상 써보니 당시에 너무 힘들었던 기억들은 어느새 흐릿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어설픈 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며
분당제일여성병원에 난임 극복 표어
‘반드시 올 행복’을 조금 더 자신감 있게 극복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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